내 그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것이 반드시 그곳에 존재하거나 과거에 존재했음을 전제한다. 물론 눈앞의 모든 것이 특별한 경험을 남기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저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 나무이거나, 지나가는 행인, 혹은 매번 같은 곳에 주차된 자동차일 뿐이다. 하지만 그토록 흔한 눈앞의 찰나는 인간인 나에게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짧고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이 찰나를 붙잡으려는 행위의 이면에는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우선 사라져가는 순간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는 철저한 분리감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 세상을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지, 어떤 필연적인 연결 없이는 내가 사랑하는 강가의 물빛도, 대교를 가로지르는 지하철도, 비 온 뒤 화단에 번지는 흙 내음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타자의 풍경일 뿐이다. 생생히 느껴지는 세상으로부터 홀로 격리된 듯한 이 소외감이 나를 붓을 들게 한다. 그림을 그림으로써 비로소 나와 무관했던 풍경 속에 나의 자리를 만들고, 세상과 뒤섞이고자 하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 자신과 나의 작업이 인간에게 규정된 시간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한계를 느낄 때면 몹시 불안해지기도 한다. 내 그림이 그저 재현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들이 계속해서 저마다 다른 얼굴을 보이며 내 앞에 나타날 때면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실감하며 세상과 깊이 교감한다. 캔버스에 그것들을 옮겨 그리며 내가 알게 된 것은 세상에는 자꾸만 기대어보고 싶어지는 어떤 다정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 사소한 풍경들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내가 수행해야만 할 일임을 다시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