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 12
엉터리 수색 개시
2023 . 12
엉터리 수색 개시
1. 지난여름 나는 초본을 떼었다. 내가 그의 자녀에서 그녀의 자녀가 된 건 2002년이었다. 그해 나는 고작 일곱 살이었어서 별로 기억하는 것이 없다.
2. 나는 부모님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즐거워하는 것을 넘어 거의 파헤치듯이 한다. 그리곤 늘 누군가의 잘못을 가리려 한다. 그러나 많은 일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예 없던 때 일어났다. 나는 내가 진실에 다가가려 할수록 그것이 완전해질 수 없음을 알아차린다.
3. 내가 있는 곳에 집중해본다. 어느 날 그녀가 아끼는 물뿌리개 모양 금속 장식품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작은 물건에 한 사람의 삶이 담겼다. 우리 집에 이런 것들이 더 있다. 식은 차가 반쯤 담긴 컵, 벌레 꼬인 향초, 곳곳에 널린 옷과 장신구. 그녀는 소박하지만 너저분한 취미를 갖고 있다.
4. 점차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결과물 이라는 사실을 생각한다. 주위의 사물과 그 혹은 그녀가 남긴 흔적은 내게 더 믿을만한 단서가 된다. 감정과 이야기는 지속성이 약하고 복잡하다.
5. 물건들을 더 면밀히 살피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한다. 이것들은 내가 눈으로 확인 가능한 그 모든 것 중 가장 솔직하다. 이들은 그 자체로 사실이다. 없어질 수 있으나 변하지 않는다.
나는 남아있는 것들 - 현재의 작은 물건들을 포착하여 회화로 표현한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진실은 그것이 발생한 오래전 이미 사라지고 거짓된 유리함만이 줄줄이 붙어 나의 판단을 흐린다. 이러한 상황 속 주변의 잔해들은 물질적 실체로써 헛된 추측을 바르게 고정한다. 나는 그러한 증거물을 수집하여 또 다른 변치 않는 물질로 남긴다. 타일 속 이미지에는 우리의 어떤 기억도, 상상도, 감정도 포함하지 않았다. 빽빽하게 모인 증거물들이 알 수 없는 사건과 현재의 나 사이 간극을 메운다.
불리한 타일, 2023, water color on canvas panel, 10 × 10cm (×45)
Statement
어디에도 속해있지 않은 나의 생활은 여유가 넘치고, 하는 일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림을 그리거나 그게 아니면 4교시를 마치고 집에 가기 싫은 초등학생 처럼 재미있는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다. 때로는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꿈꾼다. 잔뜩 땀을 빼거나 맑은 공기를 마신다거나, 아니면 모처럼 먹고 마시면서 주말을 즐기고 나면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식의 안정된 삶. 그림 같은 건 그리지 않고.
행복이라는 가치에 주목한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이 환상적인 가치가 나를 끝없는 강박과 괴리 속으로 몰아넣는다. 화가로서, 어른으로서, 여자로서, 그냥 나로서 부족함이 없어야만 행복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지금의 삶을 혐오하면서도 점점 애착을 가진다. 그리고 나와 꼭 닮은 얼굴을 한 여성들을 주체로한 작은 이야기를 만들고 회화로 제작한다. 인물들이 회화 속 세상에서 그저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할 것 같으면 나의 마음도 잠시나마 풍요로워지니까.
먼저 일상에서 내게 영감을 던졌던 상황을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한다. 예를 들면 '텅빈 가방을 멘 여자', '도로 위에 버려진 딸기스무디', '책장에서 발견한 아기 수첩'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단순한 상황이 함축하는 주체의 결핍을 찾는다. 주로 가난, 방황, 고독, 사랑 등이된다. 그것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나는 경험과 현실을 바탕으로 작업하지만, 그것이 프레임으로 진입해 오는 순간 이곳은 가상의 세계임을 확실히 한다. 이를 위해 순도가 높은 색채를 활용한다. 정말 새빨갛다거나 새파랗다 할 색으로 덮인 하늘, 땅과 벽이 주는 낯선 감각들은 긴장감이 느껴지는 화면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주관적 형태를 선호하며 신선한 공간감이 나올 수 있도록 신경 쓰는데, 여기서는 실제 풍경의 크기와 시점을 비트는 방법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작품 <다람쥐가 사는 마을>을 제작할때는 인물과 멀리 있는 건물을 가까이 당겨 실물의 크기보다 매우 축소했지만, 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확대하였다. 이렇게 하면 오직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대상 간의 관계와 공간의 흐름이 탄생한다.
비현실의 공간에는 희망이 있다. 그녀들은 현실의 나와 구분되어 결코 미래의 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세상 어딘가 존재할 행복을 꿈꾸는 채로 청순하고 멍청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적당한 만큼의 규제도 없어 오히려 만끽 할 수 없었던 한날의 기억. 어느 차안, 공원과 골목길, 어떤 날의 여행과 그곳의 건물을, 언덕을, 얼굴을 바라보며 그때에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깨닫는 것이 내게 위로가 될 뿐이다.